(터키여행) 히에라폴리스,,(26)
히에라폴리스 도시의 시작은 고대에 패권을 다투던 그리스나 히타이트, 페르시아가 아닌, BC 7세기경 프리기아(Phrygia)라는 소왕국이 주요 도시의 하나로 건설했다. 그후 BC 2세기경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어 알렉산더 부하였던 셀루코스 왕의 지배를 받았다.
BC 130년경에 로마가 이 지역을 접수해 본격적으로 로마의 도시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은 이 지역의 온천에 주목했다.
로마는 이곳에 원형극장, 아폴로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을 남겼다. 원형극장은 최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두 개의 거대한 공동묘지에는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는 공동묘지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온천수의 치유력은 거대한 온천수 분지와 수영장 등 다양한 온천 시설을 통해 활용되었다. 물을 이용한 치료법이 지역 신앙의 맥락에서 발달한 종교 관습과 더불어 생기기도 했다. 아폴로 신전이 유해한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세워져 두려움을 신성함으로 변형시켰다.
로마 시대에 이곳은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뒤섞여 지내는 국제 도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온천으로 와서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번성했을 때 히에라폴리스의 인구는 10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며, 서로마가 멸망한 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히에라폴리스는 번영을 구가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 7세기초에 페르시아 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고, 그후에 잦은 지진으로 파괴와 복구를 거듭했다.
11세기 후반에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파묵칼레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폐허로 변해 버렸다. 2000년 가까이 존속했던 도시는 석회암에 묻혀 사라졌다.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 후만(Carl Humann)이 발굴과 복원 작업을 시작했으며, 1957년 이탈리아 과학자들에 의해 재발굴 작업이 진행되어 2008년에 마무리되었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클레오파트라 고대 온천 수영장,,길이 50m, 폭 20m, 깊이 1m 규모의 온천 풀로, 고대 로마 유적들, 대리석 기둥과 건물 파편들이 온천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성 필립보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원형 극장의 건너편 산중턱에 지어진 교회로 가는 안내판 표지,, 필립보는 그리스도교의 12사도 중 한 사람으로, 서기 80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곳에서 자신의 딸과 포교를 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5세기 무렵 그의 묘 위에 순교를 기념하는 교회가 지어졌다.
성 빌립보 순교 기념 교회
원형극장,,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설된 이 원형극장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바라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멋지다.
지하의 신, 하데스(Hades)를 기리는 신전,, 로마명 플루토(Pluto)로, 죽은 뒤 만나는 신이다. 히에라폴리스에 들어선 이유는 온천 때문인데, 온천에서 나오는 유해한 독성물질 탓에 의식을 잃거나 죽는 사람도 있어서 하데스가 머무는 지하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여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