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끝자락 산속은,,(5)
12월의 강원도 산속은 비가 이틀 동안 많이 내려서 마치 여름철 홍수가 난 것처럼 물이 개울에 넘쳐 흐르고,
곳곳에 산사태가 발생하여 임도에 바윗돌들과 흙이 무너져 내렸다, 12월에 이런 것을 경험하는 게 처음이라서 당혹스럽다,
11월부터 시작한 산속의 간벌 작업도 이제서야 겨우 끝났다,
이번에 간벌 작업을 한 정 사장은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징그러운 넘이다, 이 넘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것이다, 낯짝이 소가죽보다 더 두껍다는 말처럼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과 두 번 다시 대화하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다, 간벌 작업 때문에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아무런 일도 못하고 넘어가 버렸다, 간벌 작업을 하면서 나무와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여러 가지 마무리 작업과 정리 정돈 작업 등등 이런 일들을 하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화가 난다,
며칠 있으면 올해도 끝난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가는 것 같다, 나이대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선배님들의 이야기가 실감난다, 산속에 살다 보니,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날은 당황하게 된다,
신문도 없고, TV도 없고, 전화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되다 보니, 누군가에게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한다거나 세상 소식을 듣기 위해선 산속에서 임원 마을이나 원덕읍내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오늘이 며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놨는데, 예약한 날짜가 지나간 사실을 확인하고 벌써 이렇게 빠르게 시간이 갔었나, 하고 기가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산속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실감한다,
일주일 단위의 시간이 하루처럼 흘러간다,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기에 그 시간을 최고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금 같은 시간이라고 했는데, 혹시 나는 지금 이 금쪽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매번 나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명상을 통해서 매일 매일 다른 세계로 여행을 하면서도 지금의 나, 나의 본 모습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더 넓고 더 깊고 높은 세상에서 유영(游泳)하며 지내기에 작금의 세상을 모르고 보내면서 신선들처럼 그렇게 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지구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늙어가는 노인네다, 이런 현실을 잊고 꿈속처럼 그렇게 여유있게 사는 내가 또 다른 내 모습과 마주하며 당혹해한다,
거울 속에 있는 나와 실제의 나, 그리고 내면 속에 존재하는 나는 똑같은 내가 아닐 거다,
과거 속에 있는 나도 실제의 내가 아닌 사진이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허상 속의 나일 텐데, 나는 지난 시절 나의 존재가 똑같은 나일 거라고 생각하며 의식 깊숙히 존재하는 나를 탓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그림 속의 나도 똑같은 나일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나의 존재를 꿈속에서 깨어나 진짜 나를 알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1년 후의 나의 모습과 5년 후의 나의 모습, 10년 후의 나의 모습, 20년 후의 나의 모습과 날짜를 기록하고 준비해야 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10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지금의 산속 모습이 1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니 가슴이 허(虛)하다,
내가 사라지고 없는 지금의 이 산속이 어떻게 변모해 있을지를 생각하니 답답하고 허무하다,
내가 인정하지 않아도 믿지 않아도 결국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 무(無)로 돌아간다는,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고 도망갈 수 없는 우주의 순환 법칙에 따라 나도 그런 세계에 가야만 한다,
현재의 실존하는 나를 인식하는 게 두렵다,
그냥 꿈속이라면 꿈에서 깨어나면 그만 일 텐데, 꿈이 아닌 현실 속의 내가 두렵다,
이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할 시점인 것 같다,
2024년 신년 1월에 나를 찾기 위해, 아니 미래의 나를 정립하기 위해, 아니 준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