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골이야기/2024년 상반기(1월~7월)

강원도 산골에 내린 폭설,,(1)

영혼의 수도자 2024. 2. 25. 10:06

강원도는 올해 참 이상하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났는데도, 그리고 날씨가 예년에 비해 따뜻해서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매주마다 엄청난 폭설이 내린다,

 

지난 주에 눈이 많이 내려서 하룻밤만 잠자고 급히 서울 집으로 피신했었는데, 이번에도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산속에 가기 3일 전에 삼척국유림관리소에 전화를 해서 눈을 치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포크레인이 2일 동안 눈을 치웠다고 한다,

 

화요일(2월20일) 오후 2시에 산속 입구에 도착해서 눈이 치워진 산길을 조심스럽게 운전해서 집 근처까지 올라갔는데, 집앞까지는 포크레인이 눈을 치우지 않았다, 포크레인 기사가 전화로 임도에 대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많이 쓰러져 있어서 눈길을 치우지 못했다고 말하길래 그래도 고마워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막상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메고 두 손으로 들고서 눈길을 걷는것은 힘들다,

 

집앞에는 50cm가 넘는 눈이 쌓여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 산속 날씨가 따뜻해서 얼었던 얼음들이 녹아서 집안으로 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눈이 수북히 쌓인 정원을 바라보는데 한숨만 나온다,

 

이건 눈이 그냥 쌓인 게 아니고  눈속에 파묻힌 눈속 세상이다,  아니 일본 영화에 나오는 영화 속 '설국' 장면이다, 지금까지 산속 생활을 한지 20년이 넘는 세월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눈이 온 건 처음이다,

 

긴 장화를 신고 눈길을 헤치며 산길를 내려가 황토방으로 향하는데, 산속 곳곳에 습설 눈으로 인해 나무들이 휘어져 있고, 대나무들은 완전히 눕혀져 쓰러져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부러져 있다, 어떤 나무는 뿌리채 뽑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다,

 

개울에는 장마 때 홍수가 난 것처럼 물이 개울에 많이 흐르고 있다, 또한 황토방 근처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무릎 위까지 발이 푹푹 빠진다, 그러다 보니 긴 장화 속에 눈이 들어가 물이 첨벙거린다,

 

급히 황토방 아궁이에 불을 피우려고 하는데, 그동안 내린 많은 눈으로 인해 마른 나뭇가지들이 없다, 통나무가 쌓여 있는 파고라 안까지 눈보라가 몰아치고 눈이 쌓여 나무들이 물에 젖어 있어서 나무가 불이 붙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토치 가스로  아궁이에 있는 나무들에게 계속해서 불을 피운다, 가스통 한 개를 다 비우고 나서야 겨우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른다, 불이 타는 것을 보고 겨우 의자에 앉아서 황토방 앞에 펼쳐진 전경을 보는데 설경이 무척 아름답다, 눈으로 뒤덮힌 하얀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왜 내가 이런 힘든 일들을 겪고 사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산신령님이 나한테 노하셔서 이런 벌을 내리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서  앞으로는 겸손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는 신(神)의 계시인가, 자연의 무서움을 깨닫고 남은 생을 바보같이 살지 말고 현명하게, 새롭게, 멋지게 살라는 신의 계시일까, 아니면 이젠 산속 생활을 그만두고 편안한 도시에서 남은 삶을 살라는 계시인가,,,

 

멍하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 소리에 놀라서 의자에서 일어나 개들을 살펴보니, 개 두 마리와 시커먼 짐승이 싸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지팡이를 들고 가보니 나를 따라온 숫컷 라멜과 작년에 태어난 암컷 미미가 개울가에서 짐승 한 마리와 싸우고 있다, 가까이에 가서 보니 산양이다, 두 마리 개와 싸우던 산양은 곧 목이 물려서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 마리 개들의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개들을 지팡이로 때리며 싸움을 말리니 겨우 산양은 일어나서 급히 개울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서 숨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집 근처에는 산양들이 많이 살고 있다, 산양은 피와 심장에 효능이 좋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귀중한 한약재로 유명한데, 세계적으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 북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산양들을 잡기 위해서 사냥꾼들이 사냥개와 총으로 산양을 사냥해서 죽은 산양을 현장에서 가죽을 벗겨서 가져간다, 산양이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하면서 이런 나쁜 짓을 한다, 나는 이런 사냥꾼들을 너무 싫어한다,

 

3시간 동안 황토방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나니 황토방 아랫목이 뜨겁다, 

그런데 눈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살짝 걱정이 된다, 밤새도록 눈이 내리면 낭패다, 

그래도 경치는 좋다, 나무에 수북히 붙어있는 눈이 나무에 눈꽃을 피운 것만 같다,

 

이날밤 황토방에서 오랜만에 깊고 깊은 꿀잠을 잤는데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