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한 해가 시작되기 전 가슴이 설레고 무엇을 할 건지 신이 나서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었는데, 올해는 가슴의 설렘도 없고, 특히 무엇을 할 건지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이 참 빨리 가는구나', 하고 한숨 쉬며 푸른 겨울 하늘을 바라본다,

'먹기 싫은 나이만 한 살 또 먹는구나' 하는 씁쓸한 안타까움만 가슴에 멤돈다,

 

이젠 여행도 재미없고 시시하다, 그 동안 신나게 살았던 산속 생활도 시시하고 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하다,

그래서 남사에 있는 화훼단지에 갔다, 꽃 판매점 '예삐 플라워'와 '아울렛', 그리고 '메레베 플라워'에서 꽃을 구경하면서 여러 종류의 꽃들을 또 샀다,

 

난 좀 이상한 넘인가 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꽃보다 처음으로 본 꽃에 더 관심이 간다, 새로운 꽃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과 함께 새로운 꽃을 키우는 것에 도전해서 새롭게 가꾸는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외국에서 수입한 꽃들을 주로 산다, 솔직히 실패의 확률이 높은데도 사고 또 산다,

 

남사 화훼단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마누라한테 이번에는 절대로 꽃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하였고, 나 자신도 절대로 더 이상 꽃을 사지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하고 다짐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왔는데도 나도 모르게 20개의 요상한 꽃들을 사고 말았다,

 

이건 완전히 흡사 마약 중독자 같다, 꽃을 보면 그 동안 약속하고 맹세하고 다짐하고 결심했었던 모든 게 다 사라지고 황홀감에 빠져서 이것 저것 온갖 종류의 꽃들을 사고 만다, 그러면서 만족감과 기쁨으로 마치 마약 주사를 맞고 구름 위로 하늘을 나는 것처럼 그런 푹신한 은빛 황홀감에 빠진다,

 

자동차 트렁크에 꽃을 가득 싣고서 집으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 같다, 콧노래도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김민기씨의 노래들을 듣고 또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하고, 나의 젊었을 때의 소중한 시간을 추억하기도 한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면서 이 순간의 즐거움이 날아갈까봐 카페에 들려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즐거움에 잠기는데,,,

요즘 꽃 농장이나 꽃 시장에 가보면 손님이 없다, 큰 농장에 나 혼자 꽃 구경하고 꽃을 사는 경우가 많다,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이 바로 꽃 시장이다,

 

그래서 꽃을 사면서 가격을 깎지 않고 산다, 꽃 판매장 사장들은 하나 같이 죽겠다고 울상이다, 이런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마 2026년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이 수없이 많을 거라는 예상이 든다,

 

꽃을 키우다 보면 우리나라 꽃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꽃들이 우리나라의 꽃 시장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꽃 종류에 따라 꽃을 키우는 방법이 다 다르다, 물을 좋아하는 꽃들과 물을 싫어하는 꽃들이 함께 있고, 햇빛을 좋아하는 꽃들과 싫어하는 꽃들이 있다, 또 습도를 높여서 유지해야 하는 꽃들의 종류도 많아서 이런 꽃들의 습성과 키우는 방법을 다 알아야 한다, 특히 서양난 같은 경우 참 난해하고 키우기 어렵다, 나는 수많은 꽃들을 죽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유튜브를 통해서 많은 유튜버들을 통해 꽃 키우는 방법들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죽이고 또 죽였다,

 

그리고 꽃을 키워도 꽃을 보기가 참 힘든 꽃들이 많다, 특히 대명석곡은 현재 10개 정도를 키우고 있는데, 아무리 노력하고 잘 키워도 꽃을 보기가 힘들다, 내가 산속에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꽃만 키운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농사도 지어야 하고, 꽃나무와 수많은 과일나무들을 돌봐야 하며, 또 산속 집을 관리하고 살아야 하기에 내 몸이 두 개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서울의 집은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보니 베란다가 없어서 수많은 꽃들을 키우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의 안식처인 '케렌시아' 방에 철제 팬트리 선반을 설치하고 여기에다 꽃들을 키운다,

 

나의 케렌시아 방의 경우, 겨울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꽃을 키우는데 필요한 전등 4개를 사서 전등을 켜고, 선풍기를 돌려 공기를 순환시키고, 또 가습기도 켜서 습도를 높여준다, 겨울 내내 3개월 동안 이렇게 하다 보니 마누라는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하고, 나 혼자서 아파트 방을 몇 개씩 독점해서 사용한다고, 그럴 거면 강원도 산속에서 그냥 살지 뭐할려고 집에 오느냐고 잔소리하며 나를  흡사 기생충 같은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꽃 시장에서 새로운 꽃을 사올 때마다, 하루종일 잔소리와 함께 화를 내면서 밥도 안해주고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으라고 말한다, 이럴 땐 난 큰 잘못을 한 어린아이처럼 풀이 죽어서 "그래 알았어." 하고 집에서 나와 내가 좋아하는 맛집은 집 근처에 없기에 그냥 집앞에 있는 초밥집에 가서 혼자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눈치가 보인다, 

 

마치 죄를 지은 죄인처럼 주인 여자를 보며 초밥 일인분을 시키는데,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미안스럽다, 주인 여자는 내가 혼자 갈 때마다, "에고 불쌍한 노인네, 어째 마누라나 자식도 없다냐? 친구도 없나 보네, 돈은 있어 보이는데, 아니 요즘 세상에 애인도 없는 사람이 있다냐? 머 고자 영감인가베, 에이 불쌍한 노인네 재수없네,"라고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바쁜 시간에 혼자 와서 밥을 먹는다냐, 하고 입속말로 중얼대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초밥 한 알이 흡사 모래를 씹는 것 같다, 불편한 식사를 끝내고 내가 단골로 가는 커피점에 간다,

주인 아가씨가 "이넘의 영감탱이가 또 왔네, 머 지가 커피 애호가라나 뭐라나 헛소리를 해대면서, 맨날 에스프레소 한 잔만 시켜 놓고 말이야, 지가 강원도 산속에 산다면서 농사지은 사과나 감이라도 한 박스 가져오면 머 덧난다냐"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커피 한 잔을 가져다 주지만, 왜 요즘 커피는 쓰기만 하고 맛이 없는지 모르것다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후딱 마시고 급히 커피점에서 나오는데 갈 곳이 없다,

 

특히 새해 첫날인 오늘은 공휴일이라서 갈 데가 없다, 종로 광장시장에 가서 시장 구경이나 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만사가 다 귀찮다, 참 쓸쓸하다, 죽은 내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럴 때 강가넘이나 노사장, 그리고 김사장이 살아 있다면 함께 헛소리하며 껄껄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텐데, 갈 데가 없다, 그래서 그냥 걷는다, 

 

겨울 나그네가 되어 새해 추운 겨울에 정처없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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