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일이다, 머리 이마에 작은 점이 있었는데, 상처가 났다, 

그런데 보통 때라면 3일에서 5일 정도 지나면 상처가 낫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상처가 낫지를 않는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분당 차병원에 가서 상처 부위를 검사받았다, 그리고  상처 부위의 피부를 떼어내어 암 검사를 의뢰했는데, 일주일 후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일주일 후 그 동안 상처 부위도 낫고 몸의 컨디션도 좋아져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차병원의 피부과를 다시 방문하였다,

담당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더니 피부암이라고 하면서 일종의 기저암< 피부의 가장 바깥층인 표피의 기저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특히 햇빛에 오래 노출된 얼굴이나 코, 이마, 귀 등에 잘 생긴다>이라고 말한다,

 

순간 '암'이라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이 온다, 그러나 겉으로 동요하는 기색을 내색하지 않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수술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수술을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라고 한다, 

 

2층에 있는 대기실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5년 전에 수술했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머리에 피부암이 발견되어서 5시간 동안 수술을 했었다,

 

전신 마취를 하라는 집도의(執刀醫) 말에 난 전신 마취는 안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부분 마취를 한 후 수술을 받았다,

알다시피 전신 마취는 마취약을 주사하여 대뇌나 척수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이다, 내가 부분 마취를 선택한 이유는 나의 선배님이신 한 회장님이 전신 마취를 한 후 치매에 걸리신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머리를 절개해서 보니까 암이 더 넓게 번져 있어서 5cm 이상의 머리 부분을 절개한 후 피부를 잘라내고 머리를 봉합했는데, 집도의는 머리가 텅 비게 되면 외관상 흉하다고 머리 피부를 당겨서 억지로 봉합했다, 

 

수술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자 수술 부위의 마취가 풀려서 아픔이 극도로 달한다, 그리고 사각 사각 수술하는 소리, 즉 피부를 잘라내는 소리가 들리다보니 미칠 것 같았다, 3시간 동안 수술을 하다가 30분 동안 휴식을 취하는데, 아픔이 온몸에 번졌다,

 

담당 의사가 "마취를 다시 할까요?" 라고 묻는다, 내가 마취를 하지 말고 그냥 참겠다고 하니까, 나보고 참 대단하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게 건강에는 좋다고 말한다, 30분 후 다시 수술을 시작하는데, 아픔도 계속 되다 보니 좀 견딜만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계속 나를 최면시켰다, '아픔은 서서히 지나간다, 이 아픔은 쾌감으로 변한다, 난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안 아프다,' 이렇게 나를 최면시키며 5시간 동안의 수술을 끝내고 병원 병실에 입원했는데,

 

이때부터는 통증을 줄이기 위한 몰핀 주사액을 맞아서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퇴원했는데,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서 그 동안 안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부위에 피부암이 발견된 것이다, 

 

피부암에는 세 종류의 암이 있다고 한다, 기저 세포암과 편평 세포암, 그리고 악성 흑색종이 있다, 또 피부 림프종과 피부 부속기암과 카포시 육종이 있는데, 내가 걸린 암은 그래도 착한 기저 세포암이란다, 기저 세포암은 대부분 성장 속도가 느리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착한 암이라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라는 말이 이때에 가장 잘 맞는 말인 것 같다,

 

수술은 한 달 후인 10월 19일로 잡혔다, 그런데 이번에 내 수술 담당 의사가 바로 5년 전에 나를 수술했었던 그 의사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차병원에 요일별로 근무하는 조금 촌스럽지만 서글서글하며 수더분한 의사다, 나를 알아 보고서 반가워한다, 5년 전에 나를 수술하면서 5시간 동안 식사도 못하고 고생했기에 내가 나중에 감사 인사를 했었는데, 또 다시 인연이 연결된다,

 

차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마누라한테 암이라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니까, 마누라가 깜짝 놀란다,

나는 미국에 있는 아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마누라한테도 수술 당일에 굳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였다,

 

5년 전에 수술을 받을 때 마누라가 수술실 밖에서 5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며 나를 기다렸고, 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나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었기에 고마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마음 고생을 시켰다는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담당 의사한테 간단한 수술이면 입원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란다, 사실 내 후배들 중 한 명과 내 동생 친구가 차병원 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내가 부탁하면 특별 대우를 해주지만,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의사들이 부담을 많이 갖는 것 같아서 나는 모른 척하고 부탁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금 걱정이 되고 안정이 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구나, 이제는 내가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구나, 세상에 대한 미련은 모두 버려야 하는구나,,, 이 날부터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지나온 세월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고, 그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술 당일날 마누라는 내가 너무 걱정되어서 딸한테 이야기를 했나 보다, 딸이 아침에 집으로 찾아와 병원에 갈 때와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나를 직접 차를 몰아 데려다 주겠단다, 딸의 얼굴 표정을 보니 슬픔과 걱정으로  어둡다, 그래서 내가 절대로 아들과 딸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던 건데,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수술 시간은 오후 2시이다, 그래서 오후 12시에 마누라와 함께 딸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차병원으로 향했다,

마누라와 딸은 내가 수술하는 동안 기다리겠단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여기에 있으면 더 부담되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말하고선 나 혼자 수술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기분이 참 묘하다, 수술 부위에 마취제 주사를 몇 군데 맞고서 세 명의 의사가 수술을 하는데, 나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지금 하는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게 해주시고, 더 이상 암 부위가 퍼지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이런 간절한 기도를 내가 얼마나 많이 올렸던가? 고등학교 다닐 때 폐결핵 판정을 받고 마산 국립병원에 입원했을 때, 난 매일 새벽마다 병원 내에 있는 교회에 가서 살려달라고 기도를 올렸었고, 살아가면서 어려운 난관들이 생길 때마다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었는데, 또 다시 마음 속으로 수술이 잘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흡사 길고 긴 1년 같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수술 징후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30분 동안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리고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데, 좀 어지럽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더 이상 암이 전이되지 않고 간단하게 수술이 끝났다는 것이다,

 

집으로 오니까 마누라와 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왜 연락하지 않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왔느냐고 야단이다,

내가 몸 상태도 괜찮고,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랬다고 하니까 딸은 눈물을 흘리며 섭섭해 한다, 아빠가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시고 베풀어 주셨는데, 이런 작은 일도 못하게 하느냐고 눈물을 흘린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 행동이었는데, 딸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섭섭함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 방으로 와서 침대에 누웠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나의 행동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 동안 팽팽하게 조여 있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면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머리 이마 부분과 귀 뒷부분 두 곳을 수술하고 나니 일주일 동안 샤워도 못하고 힘든 일도 못하니 참 답답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수술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되새겨보며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마음을 쓰고 괴로워했던 일들, 이제는 지나간 일들은 훌훌 털어 버리며 살아가고 싶다,

작은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더욱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오지 중 오지에 살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강원도 삼척시 임원과 원덕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다, 마을 이장이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꼭 후회를 하게 된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나의 귀중한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친구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특히나 시골에서는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항상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의 물건이나 농사 지은 것들을 훔쳐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지난 번 원덕에 사는 천 사장과 김 사장 그리고 김 사장의 지인 이 사장을 우리 산속에 초대해서 돼지고기 바베큐 파티를 열었는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가운데 김 사장이 우리 산속집 주변의 큰 나무들이 하늘의 시야를 가린다고 싹 다 베어주겠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거절하였다, 난 솔직히 내가 20여년 넘게 가꿔 온 것을 단지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베겠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점잖게 거절하자, 이번에는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산 입구의 밭에 난 잡초들을 공짜로 천 사장과 함께 예초기로 베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난 달에 예초기 좋은 것을 새로 샀다고 자랑한다, 나는 그러냐고 하면서 확답을 피했는데, 그 다음 날(10월 4일) 아침 9시경에 우리 산에 송이버섯을 채취하러 이 사장과 함께 왔다,

 

그래서 나는 산 입구에 있는 밭들 중에서 몇 년 전에 새로 놓은 다리 건너에 있는 밭을 얘기하면서, 그 밭이 약 1,000평 정도 되는데, 김 사장 혼자서 시간 날 때 예초기로 풀을 베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수고비를 죽겠다고 하면서 천 사장과 함께 하지 말고 김 사장 혼자서 잡초를 베라고 하면서 산 입구의 다리 건너에 있는 밭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산 입구의 밭은 잡초가 무성하다, 그래서 바빠서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일요일(10월 11일) 오후 12시에 김 사장이 이 사장과 함께 송이버섯을 따려고 함께 왔다, 그런데 앞밭 이야기를 하면서 잡초를 3일 동안 힘들게 일해서 깨끗하게 제거했단다, 나는 오늘 아침에 내려가서 확인했는데, 그대로 있던데요, 하면서 혹시 다른 곳의 잡초를 제거한 거 아니냐고 말하니 펄쩍 뛴다, 그러면서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함께 가보자고 한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송이버섯을 조금 땄다고 하면서 <산에서 능이버섯이나 송이버섯을 많이 따도 절대로 많이 땄다고 말하지 않는 게 시골 사람들이다> 함께 산 입구에 가보자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앞장 서서 자동차를 운전해 산 입구 밭에 갔는데, 내가 말한 밭이 아닌, 반대편에 있는 다른 밭의 잡초를 제거했단다, 반대편에 있는 밭은 약 400평으로 잡초가 난 곳은 약 300평 정도이다, 그리고 그곳은 아무 것도 재배하지 않고 그냥 묵혀 두는 밭인데, 그곳의 잡초를 다 제거했다고 힘들게 했다고 자랑하는 게 기가 막힌다,

 

내가 다리 건너 밭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천 사장이 이곳이라고 해서 일을 했단다, 그래서 내가 다리 건너에 있는 앞밭을 가리키며 이 밭은 원래 1,000평이지만 나무 그늘과 둑을 빼고 나면 약 700평 정도로 이곳을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일하겠다고 말하는 게 영 믿을 수가 없다,

 

김 사장과 헤어진 후,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제초기로 하루 일하는데 인건비가 얼마나 되느냐고, 그리고 하루에 몇 평쯤 일하느냐고 물으니, 제초기로 본인이 기름도 넣고 해서 22만원이고 약 1,000평쯤 일한다고 한다,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다들 놀고 있는데, 소개 시켜줄까요? 하고 묻길래, 알겠다고 다음에 연락하겠다고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김 사장은 일주일 동안 약 700평 밭의 잡초를 제거했다, 나한테 전화로 제초기의 날이 나갈 정도로 고생 고생 하며 일했다고, 약간 엄살을 떨면서 깨끗하게 제거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10월 16일(금) 오후에 작업 현장에 함께 가보았는데, 약 50평의 밭은 그대로이다, 

 

왜 이곳은 그대로 두었냐고 물었더니, 잡초 위에 비닐 그늘막이 쳐있어서 그냥 두었단다, 난 속으로 비닐 그늘막을 잡아당기면 되는데,,,작업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수고했다고 말하고선, 내일(토요일) 오전에 낚시 가게로 찾아갈 테니 그때 보자고 말하고 헤어져서 산속 집으로 왔다,

 

다음 날 아침 11시경에 원덕읍에 있는 낚시 가게로 가니까 천 사장도 와 있다, 나는 김 사장한테 이번에 일한 것 얼마 드리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김 사장과 천 사장이 우리 산에 들어와서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는데, 대개 다른 사람들은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을 따면 딴 것을 산주(山主)와 반반씩 나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딴 버섯의 절반을 내라고 하지 않았기에 솔직히 김 사장이 그냥 괜찮다고 말하면, 수고비로 30만원을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 사장이 2주 동안 두 곳의 밭에서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면서 150만원을 달라고 한다, 나는 너무 놀라서 두 곳의 밭을 다 합쳐도 1,400평쯤 되고 400평은 그냥 공터로 약 1,000평인데,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오느냐고 하니까, 하루 제초기로 일하는 사람의 일당이 25만원이고, 기름값과 장비 가격은 별도라고 하면서 15일 동안 일한 게 150만원이라고 특별히 싸게 해주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내가 얼마 전에 마을 이장한테 확인했는데, 제초기로 일하면 장비와 기름값 포함해서 일당이 22만원이고 하루에 1.000평쯤 일한다고 하더라, 하고 말하니까 순간 김 사장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모든 게 냉냉하게 얼어붙는다, 옆에 있던 천 사장이 그러면 50만원이면 어떠냐고 하길래, 내가 그게 좋겠다고 하니까, 김 사장은 떫은 감을 씹는 표정으로 기분 나쁨을 억지로 감추며, 마누라한테 계좌번호를 적어서 나한테 주라고 말한다,

 

나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지갑에서 50만원을 꺼내 김 사장한테 주고 낚시 가게를 나왔는데, 기분이 더럽게 나쁘고 꼭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시골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완전 봉 취급한다, 

예전에 사냥꾼 정가한테 그렇게 당했는데, 이번에는 김 사장한테 당했다, 나를 호구로 여긴 것이다,

이런 사람과는 인연을 끊는 게 최고다, 내년부터는 우리 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그 동안 내가 김 사장한테 매년 추석 때와 설 명절 때 선물을 준 것이 후회되고,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참 씁쓸하고 기분이 안 좋은 계절입니다,

 

요즘 시골에서는 농지 전수조사 때문에 난리다, 농지 전수조사는 이번 정부에서 농지 투기를 근절하고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전국 농지의 소유 및 이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로,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래 처음이고 여태껏 없었던 일이기에 농촌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오늘날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데다, 비료와 농약을 비롯한 각종 농자재 가격까지 비싸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60~70대 노인들로,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여겨 온 사람들이기에, 달리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이어 가는 것이 농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논이나 밭을 물려받았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한 채 오랫동안 농지를 방치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님이 질병이나 고령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워져 친척에게 경작을 맡기거나 이웃에게 농지를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며, 농지를 당장 경작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농지 소유주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농지를 방치할 경우, 농지를 처분하도록 명령받거나 이행강제금 <농지법 위반으로 인한 처분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농지를 처분할 때까지 매년 부과되는 금액> 까지 부과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지금 농촌에서는 농지를 팔고 싶어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처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농지 투기는 아파트 단지 조성이나 계획적인 도시 개발처럼 땅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에서나 발생하기 쉽다, 주변에 개발 가능성도 없고 별다른 변화도 없는 농촌의 논밭을 대체 누가 선뜻 사려고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자 농촌에서는 농지가 반값으로 떨어지고, 누구도 농지를 구입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다,  농지를 처분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팔 곳은 마땅치 않은 현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직접 농사를 짓기도 어려운 현실, 이러한 농촌의 복잡한 사정을 외면한 채 법과 원칙만을 앞세운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작고하신 어머니가 사셨던 용인 원삼면에 있는 집을 허물기 위해 철거 전문 회사를 알아보는데, 각 회사마다 가격이 다르고 왜 이렇게 복잡한지를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쓸데없는 법과 행정 절차가 너무도 복잡하다, 헌 집을 철거하려고 해도 전문 면허가 있는 업체가 공사를 해야 하고 정부에 제출하는 서류가 수십 가지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용인 집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추억이 깃든, 내 삶의 수많은 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곳이자, 고향 집보다도 더 깊은 애착이 깃든 집인데, 막상 허문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쌓인 추억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며칠 전(10월 13일), 내가 가장 존경하는 고향 선배이자 친 형님처럼 모셨던 한 회장님<모 대기업의 회장님이셨다>의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 강원도 산속은 송이버섯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조금 채취했는데, 그 중 가장 크고 괜찮은 것 송이 10개를 한 회장님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래서 송이버섯을 받으신 사모님께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신 것이다,

 

사모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기쁘고 반가웠지만, 가슴 속은 불안했다, 그 동안 한 회장님께서는 치매로 치료 받고 있어서 직접 전화 통화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모님을 통해 집 사람이 소식을 전해주는 게 전부였기에 그냥 모른 척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모님을 통해 일 년만에 한 회장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회장님은 그 동안 치매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는데, 사모님께서 올초에 폐암 수술을 받게 되어 한 회장님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다가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치매로 발전해서 올봄에 치매 전문 요양원에 입소했단다, 다행히 사모님은 폐암 수술이 잘 되어서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무릎까지 안 좋아서 두 무릎을 수술 받으셨다고 한다,

 

사모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흘러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좋으신 분이 편안하게 마지막 인생을 즐기다 가셔야 하는데,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로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는 슬픈 영화 속 이야기 같다, 한 회장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시고 봉사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셨지만, 지금까지 연락 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변치 않는 마음에 매우 고마워하신다,

 

인생이란 이런 건가? 왜 마음씨 좋고 착한 사람은 불행해지고 나쁘고 독한 사람들은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하게 사는 걸까?

과연 신이 존재하는 걸까?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현상을 보고도 못본 척 두 눈을 감고 계시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들 때 나를 도와주시고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셨던, 고마우신 한 회장님이 그립다, 

너무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이별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한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니까 사모님께서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서 사시는 한 회장님를 보면 가슴이 아플 거라고 하면서, 외부인은 면회가 안된단다, 가족들만 일주일에 단 한 번 얼굴만 보고 온단다,

 

사모님과 전화를 끊고서 하루 종일 울고 우울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지난 9월, 산속 집에 태양광 밧데리 수명이 다 되어 새로 구입하였는데, 이것을 원덕읍에 살고 있는 천사장과 김사장이 산속에 와서 새로 설치해 주었었다,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한글날 다음 날인 10월 10일(토)에 천 사장과 김 사장, 그리고 두 사람의 지인인 이 사장을 포함한 총 3명을 산속 집에 초대하여 돼지고기 목살 파티를 열었다,

 

오랫만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고기를 구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을 산속에 초대하는 건 몇 년 만이다, 

 

미리 준비한 통나무에 불을 피우고 통나무가 서서히 타서 숯불로 변할 때 돼지고기 목살을 스텐 철망에 올려 놓으니 고기는 서서히 익혀져 간다, 이번 파티에 서울에 사는 이 사장님도 함께 왔다,이 사장은 창호 사업을 하시는 분인데, 나와 같은 경주 이씨다, 항렬<같은 혈족의 직계에서 갈라져 나간 계통 사이의 대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는 나의 손자뻘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깍듯이 대한다, 예의 바르고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서 나는 이 사장과 함게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후배가 더 조심스럽다, 게다가 고향이 경상도 안동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훌륭한 성품을 지녀서 그런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품위가 있다, 그래서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봐 나 역시 말 한 마디 한마디를 생각하며 말한다,

 

천 사장은 내가 산속에 살면서 어려움에 처해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해결해주는 나의 천사다, 그래서 천 사장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주려고 이번에 세 사람을 초대한 것이다,

 

미리 준비한 쌈채소와 능이버섯 무침, 명이나물 장아찌 등 몇 가지 반찬들, 그리고 머루 포도와 샤인 머스켓 등 과일을 돌식탁에 세팅해 놓고서 한 낮의 가을 맞이 파티를 시작하였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데,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세상 소식과 내가 모르는 소식을 듣는 것은 흥미진지하고 호기심을 불러온다, 천 사장의 입담과 여러 가지 경험담은 항상 즐겁다, 낚시업을 하는 김 사장의 약초에 대한 지식과 버섯 채취에 관한 산행 이야기, 그리고 이 사장의 사업 이야기 등 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밀도는 깊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게 한다, 

 

사람을 초대한다는 건 참으로 힘들다, 미리 집안과 마당 청소도 해야 하고, 음식과 반찬을 준비하는데, 나 혼자서 하는 건 힘들다,

예전에는 신이 나서 준비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일들이 귀찮고 힘들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삼척 시내의 맛있는 음식점에서 사람들과 약속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번엔 천 사장과 김 사장, 이 사장이 우리 산속에 능이와 송이버섯을 채취하려고 오다 보니 겸사 겸사 산속에서 파티를 열게 되었다,

천 사장은 나를 위해 은어를 한 박스 가져왔다, 낚시는 천 사장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인데, 그가 올봄부터 여름철에 경상도 산청에서 잡아온 아주 귀한 민물고기다, 그리고 이 사장도 여러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 그냥 오라고 항상 말해도 빈 손으로 오지 않는다, 이런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나도 땅속 저장고에 보관해둔 매실 액기스 10년된 것을 1L 병에 넣어서 각가 세 사람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 사장이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땅속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와인 한 병을 이 사장한테 선물로 주니까 다른 사람들도 와인을 달라고 한다, 천 사장은 오늘 저녁에 손님을 5명 초대했다고 하면서 2병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천 사장에게 2병의 와인과 와인 잔 5개를 주니까 김 사장도 자신은 건강 때문에 술을 끊은지 8년 되었다고 하면서 대신 아들한테 준다고 와인 한 병을 달라고 한다,

 

사실 이 와인들은 비싼 와인은 아니다, 약 3만원에서 7만원대의 와인이지만 20년 동안 땅속 저장고에 보관해둔, 잘 숙성된 와인이라서 맛이 아주 좋은 와인들이다, 요즘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저장고에 오래된 와인들이 제법 많이 있다, 그래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선물로 주면 너무 좋아한다, 

 

오후 3시경, 천 사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이 온다고 떠나자, 김 사장과 이 사장도 얼마 있다가 떠난다,

이들과 이별하고 난 자리는 쓸쓸하다, 오랫만에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 소리가 집안에 들려 기분이 좋았는데, 적막한 저녁은 쓸쓸하다,

 

낙엽도 지고 단풍도 물들었는데,,,,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는 가을 산속 파티로 인해 행복함이 가득차 있다,

 

나무들은 낙엽이 지고 땅으로 떨어진다,

 

돌 화덕에 큰 통나무들을 넣고 불을 피운다,

작은 나무들과 큰 통나무를 적당하게 섞어서 태워야만 큰 통나무들이 잘 타오른다,

 

모닥불을 피우는 이유는 어쩌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내 가슴 깊숙이 맺혀 있는 질기고 질긴 응어리와 엉킨 앙금들을 하나씩 던져 넣고, 그것들이 불꽃 속에서 타오르며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먼 옛날, 우리 인류의 조상인 원시인들은 불을 피워 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불을 둘러싸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타오르는 불꽃을 신과 교감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 인간의 유전자 속에 불꽃을 향한 어떤 본능적인 끌림이 새겨진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가 모닥불을 피우고, 그 불꽃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불길을 응시하는 것도 그 오래된 기억이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문명과 멀리 떨어진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오래 전 마야와 잉카 문명 속에서도 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에게 바치는 제의였고,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였으며, 인간의 염원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을 담아내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래서 마야 종족은 불을 피우고 불꽃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행위를 신을 모시는 귀중한 제례의식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 밤 모닥불 앞에 앉아 말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아주 오래전 조상들의 몸속에 새겨진 기억을 되살리는 일인지 모른다, 가슴 속에 쌓인 묵은 감정들을 불길에 내맡기고, 한때 나를 괴롭혔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재가 되어 흩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불길은 사람의 의식과 감정을 마취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으면 몽롱해지면서 마약을 먹은 것 같다고나 할까, 평소엔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 세상이 아닌 내가 처음으로 있었던 저 먼 세상에서,,, 

 

다락에 둔 북을 꺼내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옆에서 북을 울려야겠다,

북도 치고 징도 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어야겠다,

 

불빛을 보다가 블루투스 라디오를 가져와 USB에 저장된 노래들을 듣는데, 평소에도 자동차를 운전하며 매번 듣는 노래인데도 캄캄한 밤중에 활활 타오르는 불빛을 보면서 듣는 노래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로드 맥퀸의 'Solitude's My Home',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아름다운 사람', 정원의 '허무한 마음',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박인희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등등을 듣는데, 매번 들은 노래인데도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노래를 듣는다, 노래 속에는 나의 옛 사랑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먼저 떠나간 내  친구들 이야기들도 함께 있다, 영식이, 인행이, 인호, 일환이, 서홍원 등등이 나타나 이야기한다,

모닥불 주위에서 춤추고 노래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혼

                          - 김소월(1902-1934)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목마름이 시작 됐다,

심한 목마름이다, 이 목마름은 가을이 왔다는 징표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외로움이 뼈속 깊숙히 느껴지고, 지난 시절들이 그리워지고, 옛 사랑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마당에 쌓아둔 통나무를 태우고 멍하니 불꽃을 보면서 밤을 지세운다,

 

왜 가을이 오면 가슴이 유난히 더 허해지고 쓸쓸한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고히 간직했었던 사진들과 편지들을 불꽃 속에 던져서  태운다, 편지들을 태우기 전에 편지 한 장 한 장을 읽어보는데,

편지 속의 글들이 가슴을 찢어 놓는 것 같다, 구절구절(句節句節) 사무친 이야기들이 나를 그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 읽은 편지들을 불꽃 속으로 던지는데, 가슴이 텅 비어지면서 눈물이 난다, 연기 속에서 나의 슬픈 추억과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아마 '나'라는 존재도 곧 이런 사진들처럼 이 세상에서 모두 다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자연의 법칙에 하도 답답해서 캄캄한 하늘을 보며 고함치고, 괴성을 지르고, 징을 두드리고, 목탁을 두드려도 가슴은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해지고 메워지지가 않는다,

 

오래 전 내 친구 병탁이가 밤만 되면 술을 마시고, 시골  읍 마을을 돌아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던, 그 알 수 없는 이유를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넘의 아픔이 얼마나 컸으면 그렇게 밤마다 고함지르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는지를 조금 알 것 같다,

 

사막으로 달려가고 싶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밤을 지세우고 하늘의 별을 보면서 내 목마름을 가득 채우고 싶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베르베르족이 치는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다,

 

가을이 왔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산속의 온도가 낮에는 23도까지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12도에서 17도를 왔다 갔다 한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억새 꽃이 피어서 하늘거리는 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올해는 알밤이 많이 열렸다,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주어서 벽난로에 구워 먹는 즐거움이 가을이 익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제부터 겨울 준비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작년에 파고라 옆에 쌓아둔 참나무들을 엔진 톱으로 자르며 겨울준비를 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어쩌면 큰 행운일 텐데 왜 가슴은 타들어가는 것처럼 허해지고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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