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처서<處暑, 24절기 중 14번째 절기로,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력 8월 23일경이다>라는데, 며칠 전부터 장마 때처럼 매일 비가 온다, 비가 내릴 때는 흡사 큰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거세고 많은 비가 내린다,
비가 매일 오니까 집안에 있는 퓨즈<fuse, 과전류 보호 장치의 하나로 과부하 전류를 자동적으로 차단하는 부품> 박스의 차단기 하나가 고장이 나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원덕읍에 있는 전기 상점에서 차단기 두 개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차창 앞이 보이지 않고 자동차는 마치 물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임도가 물속에 잠겨 있다, 몇 년 전 태풍이 왔을 때 이랬었는데, 걱정을 한 가득 안고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개울은 많은 비로 인해 엄청 불어났다,
새로 구입한 차단기를 전기 가게의 사장이 설명해준 대로 설치하려는데, 잘 안된다, 그래서 자세히 차단기를 보면서 기존에 설치한 차단기의 나사를 하나씩 풀고서 다시 새로 산 차단기로 고정시킨 후 차단기 스위치를 올리니까 전기가 집안에 들어온다, 낮인데도 비가 많이 오니까 집안이 캄캄하다,
그런데 차단기 하나가 누전이 되었는지 라디오와 연결된 전기선이 들어오지 않아서 라디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놔두고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전기가 없는 집은 여러 모로 참 불편하다,
잠시 후 베란다로 나가서 비가 쏟아지는 정자로 향했다, 정자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비 구경을 하는데, 낮인데도 캄캄하다, 가끔씩 '우당탕탕' 하며 번개치는 소리와 함께 번개 빛이 순간 어둠 속에서 산속의 풍경을 밝은 조명이 비추듯 환하게 비춰 주는데, 참으로 기묘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가 지금 살아 있는지 혹은 죽어서 이런 풍경을 보고 있는 건지 분간되지 않고 지금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상에 여행을 온 것처럼 신기하고 행복해진다,
거센 비는 3시간 동안 내리다가 멈춘다, 그리고 다시 이슬비가 내리다가 멈축고 곧 태양이 나온다, 참 변덕스러운 날씨다,
장마가 지나간지 오래 되었는데, 이런 현상이 4일 동안 매일 일어난다,
집 마당에 두 그루의 마로니아가 있는데, 나무 열매가 익어서 땅으로 떨어진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
마로니아 열매는 알밤처럼 생겼지만 독성이 있어서 먹지를 못한다, 매일 수십 개의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이 열매는 쥐들도 먹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집에서 호야와 양란 분갈이를 하고 있는데, 큰 포크레인이 산 위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포크레인은 이런 소리를 내지 않아서 임도를 바라보니까 20톤짜리 큰 볼보 포크레인이다, 이 포크레인은 작년과 올해 내가 사는 산속을 지나서 산 정상 부근에 임도를 새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2년 동안 매일 아침 일하러 내가 사는 산속 집앞을 지나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내가 잘 아는 포크레인 기사이다,
포크레인을 세우라고 손짓을 하고서 기사한테 왜 벌써 내려오느냐고, 공사가 끝났느냐고 물으니까, 공사가 끝난 게 아니고 몸이 아파서 내려간다고 하면서 앞으로 자기 대신 다른 포크레인 기사가 와서 일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포크레인 기사의 얼굴이 노랗다, 좀 걱정이 되면서 앞으로 못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하면서 임도 길 옆에 세워둔 바위를 집 입구로 옮겨 달라고 하였다, 바위를 놓을 자리를 지정해주니까 포크레인 기사가 큰 바위를 쉽게 운반하여 놓고서 포크레인으로 쾅쾅 내려치니까 임도 땅이 흔들린다,
난 고맙다고 말하며 포크레인 기사와 이별했는데,,,참 넌 잔인한 넘이다, 그래 아프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일을 시켜야 하느냐고, 나 자신을 책망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 번에 영혼의 쉼터 입구 맞은편에 큰 바위돌을 운반해 달라고 포크레인 기사에게 미리 30만원을 주었기에, 이번에 이별하면 30만원을 그냥 날리는 게 아니냐고, 내가 뭐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잘한 일이다,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바위돌에 새기고 싶은 글이나 생각하자고, 하며 바위돌을 바라보니 대문 겸 집 입구에 있는 장식돌이 이쁘다, 이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면서 나와 함께 할 것이고 내가 죽고나서도 이 바위돌은 이곳에 앉아 있겠지,,,
이 바위돌에 이끼를 입혀서 멋있게 옷을 입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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