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골이야기
(터키여행) 에페소스,,(31) 본문
에페소스는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 세워진 도시로서 에게 해로부터는 약 6.5km 떨어져 있었다.
에페소스는 신약 시대에 로마제국의 도시들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로서 소아시아에서 정치와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당시 인구가 3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아시아 주재 로마 총독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했다. 에페소스는 또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 활동과 관련해서도 큰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에페소스라는 도시가 언제 세워졌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에페소스는 기원전 1044년경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의 정복으로 20개 도시로 구성된 이오니아 동맹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이 도시는 차례로 리디아 , 페르시아 , 그리스 , 셀레우코스 왕조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에페소스는 해양 무역을 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요 무역로로 통하는 간선 도로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항구도시로서 그리고 상업과 재정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의 실상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이 신전은 에페소스에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준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신전을 방문하려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에페소스를 찾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장인들은 신전 모형이나 기념품들을 만들어 팔았으며, 숙박업자나 음식업자들의 영업 활동도 대단히 활발했다. 에페소스인들은 에페소스의 다이아나라고 새긴 동전을 발행해 아르테미스 숭배를 촉진하기도 했다. 신전 외에도 에페소스에는 2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 공중목욕탕, 체육관, 도서관, 시장, 광장, 상업과 행정 사무소 등 여러 건축물과 문화 시설이 있었다. 극장과 항구를 잇는 큰 도로도 유명했는데 이 도로 양쪽에는 높은 원형 기둥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에페소스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 사상에 물들어 있고 마술 같은 것들도 성행하던 에페소스에서 참으로 말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기적을 행하고 성령의 세례를 베풀면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를 떠난 후에도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 당부한 모습을 보면 그가 에페소스 교회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바울 이외에도 에페소스 공동체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아폴로, 티모테오, 티키코스, 오네시포로스였다. 에페소 교회에 전해진 복음은 주변의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 콜로새 등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워지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성경에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서간이 실려 있는데, 이는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잘못을 저지르는 나약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인내한 에페소 교회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요한 묵시록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사도 요한은 1세기 말경 에페소에 머물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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