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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달랏 - 다딴라 폭포,,(12)

영혼의 수도자 2025. 3. 14. 04:24

다딴라 폭포는 15~17세기에 일어났던 참족과 락족, 찔족의 충돌과 관련이 있는데, 특히  참족과 전쟁 당시 폭포 아래 깊은 동굴에 숨어서 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언덕이 많은 깊은 골짜기 한가운데에 폭포가 있었기 때문에, 수백 년 전 참족과의 전쟁에서 한때 원주민 군대의 피난처로 이용되었고, 이 폭포 덕분에 한 군대가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딴라 폭포에 관한 세 가지 전설이 있다, 

 

첫 번째 전설: 용맹한 끌랑이라는 총각과 주변의 부족인 흐비앙이라는 처녀가 이곳 다딴라에서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호랑이 두 마리, 일곱 마리의 늑대, 그리고 여우 두 마리가 포함된 한무리의 사나운 짐승들과 뱀 두 마리와 싸웠는데,  칼로 뱀 두 마리를 자르고 숲으로 간 다음, 9발의 화살을 들고 늑대와 여우를 쏘아 달아나게 했다. 이후 다딴라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두 번째 전설: 다딴라는 잎사귀로 덮인 맑은 물 때문에 선녀들이 목욕을 하곤 했던 폭포였다고 한다. ‘잎사귀 밑에 물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폭포를 발견했을 때 소수민족들은 그것을 ‘물이 있는 잎사귀 아래’라는 뜻의 ‘다땀느느하’(Đạ Tam Nnha)라고 이름 붙였다. 후에 프랑스와 킨족이 이 서정적인 고지에 발을 들여놓자, 그 말은 다띠나(Đatina)로 변했고, 그 다음에는 다딴라(Đatanla)로 변했다.

 

세 번째 전설: 포엠 시대에 판두랑가에 온 참족들이 종종 럼비엔 고원에 있는 락족과 찔족을 공격하여 땅을 얻고 노예를 잡으러 왔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여 락족이 패배하려는 순간, 그들은 우연히 이 폭포를 발견하고 식수를 얻었기 때문에 락족은 승리를 거두며 마을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참족들은 “잎사귀 밑에 물이 있다”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패배했다. 그 후, 락족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다땀느느하’(Đạ Tam Nnha)라고 이름지었다.

 

                                                                                                                                     - 위키백과사전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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