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골이야기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들,,(3) 본문

나의 산골이야기/2023년 하반기(8월~12월)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들,,(3)

영혼의 수도자 2023. 10. 2. 05:09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로 내려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내 초등학교 친구 한순옥이다, 반가워라, 

 

가을이 와서 가슴이 쓸쓸하고 울적해서 USB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음악을 들으며 멜랑꼴리한 감성에 빠져 있었던 참인데 전화가 온 것이다,  

 

한순옥과는 5개월 전에도 전화가 와서 잠깐동안 통화를 했었는데, 그때는 우리 초등학교 친구들이 함께 만나자고 했었다, 

 

황보경애와 순옥이, 박경자, 김복주, 나, 이렇게 5명이 서울의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내가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전화가 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순간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반가움에 모든 허울이 벗어던지게 된다, 

 

한순옥은 고향 함양에 있는 교회를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함께 다녔던 친구이다,

또 서울에서도 몇 번 만나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 친한 여자 친구이다, 서울에서 목사님과 결혼해서 평생을 목회활동 및 사역에 힘쓰며 살다가 이젠 목사님이 은퇴해서 불광동의 단독 주택에서 두 사람이 잘 살고 있다,

 

그녀는 매일 매일을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월요일은 합창단에 들어가서 노래 연습을 하고, 화요일에는 요가 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운동하는 등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매우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몸이 너무 건강해서 아픈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자랑한다, 덧붙여서 교회의 친구들과 국내 및 해외로 여행도 많이 다니는 등 너무 바쁘다고 너스레를 떤다,

 

내가 강원도 산속에서 살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하면서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 

나는 내가 사는 산골은 오지 중의 오지로, 전기도 없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하면서, 나는 자연 속에서 파묻혀 사는 ‘자연인’이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니까 더욱 더 흥미를 보이며, 친구들과 다음 주에 당장 산속으로 찾아오겠단다,

 

아 난 이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여자 5명, 그것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왈가닥 할머니들 5명이 산속에 온다면 야단법석일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난 도저히 나 혼자서 이 할머니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전화로 당장 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길 수 없어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너, 우리 교회에 함께 다녔던 노필선 잘 알지? 혹시 전화번호를 아니?” 라고 물으니,

“그래 네가 그때 노필선을 참 좋아했었지, 그런데 노필선이하고는 연락이 안됀다, 서로 연락을 안한 지 20년이 넘었다.| ”라고 하면서, “필선이도 나처럼 교회 목사님과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만나고 싶어? 그럼 내가 한번 알아볼게.”라고 말한다,

 

이 소리에 그만 내 정신이 아찔하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의 머릿속은 만약 노필선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변했을까, 10년 전에 우연히 만난 김을수라는 친구가 말한 게 떠오른다,

 

한동네에 살던 노필선을 재경 유림 동창회에서 만났었는데, 살이 너무 쪄서 그 옛날 그 모습이 아니라고, 만나면 실망한다고, 나보고 만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접고 마음 속으로만 그리워하며, 고등학교 다닐 때의 노필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노년이 된 노필선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만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친구 순옥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생각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며 노필선 생각뿐이다,

이런 내 생각을 모른 채 아랑곳하지 않고 순옥이는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신나게 떠든다, 한 시간 내내 그 옛날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데, 난 순옥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필선이가 살고 있는 지리산 밑 유림마을을 찾아가서 노필선 집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캄캄한 밤에  우리 두 사람은 세 시간 동안 시골 밤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손 한 번도 잡지 못하고 밤길을 걸었던 그 오래된 생각이 내 가슴을 흔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지금 나는 운전하면서 내가 왜 그때 사랑한다는 그 말 한 마디를 못했을까, 하고 후회한다, 다시 만나면 그때 못했었던 그 이야기, 당신이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지금 과연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죽기 전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인데, 가슴이 서늘해져서 순옥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다, 

 

다음에 친구들과 만나자고 이야기를 끝내고 산속 집으로 왔는데, 1시간 이상을 순옥이와 이야기를 했다,

비 오는 산속 집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와인 한 병을 가져와서 불꽃이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노필선을 생각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박인희의 청아한 노래 소리가 더욱 슬퍼서 이날 밤을 지세우고 말았다,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시 / 박인희 노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https://youtu.be/pG9y8yn4S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