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골이야기
LP 카페 동작골 '노래 꽃피는 마을',,(3) 본문
천 사장 친구 중에 이 선장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선장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종로에 있는 단성사 극장 옆 음악다방에서 DJ 일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음악 애호가이다,
아버지는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은행장을 역임하는 등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젊은 시절을 부모님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일을 하면서 낭만객으로 살았다, 그러나 음악을 하느라 세상 실정을 잘 몰랐던 그는 사업을 하면서 그 많았었던 부모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바다가 좋아서 강원도 시골 원덕읍 호산으로 내려와 작은 집 한 채와 작은 배 한 척을 가지고 혼자 살고 있는 낭만 멋쟁이다,
돈에 욕심이 없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는 하루는 쉬면서 보내고, 하루는 놀면서 보내고, 또 하루는 낚시를 하면서 보내는 그야말로 한량(閑良)처럼 참 여유롭고 한가로운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 돈없는 백수, 전문기술도 없고 그냥 하루 하루를 마음 편하게 사는 시골 노인이다, 돈이 없어서 이빨이 다 빠졌는데도 임플란트도 못하고 잇몸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도 행복하게 산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순박하고 착하다, 내가 사는 산속 집에 정자나 베란다를 보수할 때 천사장과 함께 와서 일하는 등 몇 번이나 우리 산속을 왔었기에 친밀하다,
오랜만에 천 사장과 함께 부구 바닷가에 있는 장어집< <황제가>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이 선장도 함께 왔다, 이 선장은 요즘 이천의 산주(山主)로부터 부탁을 받고 산주 대신 송이를 채취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 산에 올라가서 땄다고 하면서 송이버섯 큰 것 5개를 깨끗하게 씻어서 가져왔다, 장어와 함께 쌈을 사서 먹으면 맛있을 거라고 나를 위해 준비해왔다고 한다, 감동이다, 난 생애 처음으로 송이버섯과 장어를 상추쌈에 싸서 먹었는데, 처음으로 맛보는 음식이지만 독특한 송이버섯 향과 맛이 난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이 선장이 나한테 시간이 좀 있느냐고 묻는다,
난 시간이 널널하다고 하면서 장어집 옆 건물에 있는 카페에 가서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하니까, 천 사장이 좀 특이하고 멋진 곳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동차를 따라 오라고 하며 이 선장과 함께 먼저 출발한다,
탕곡리에 있는 가곡 유황온천으로 가는 국도(國道)를 타고 달리다가 중간쯤에서 '동작골'이라고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좁은 길을 달리는데, 내가 처음 가보는 길이다, 동네 안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농로(農路, 농가와 경지 사이를 연결하여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고 비료나 수확물 따위를 운반하는 길)를 약 10분 정도 달리는데 경치가 아름답다,
구불구불한 좁은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가 작은 오두막집이 보이는 곳에서 천 사장 자동차가 멈춘다,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자, 머리가 하얀, 염색하지 않은 50대 후반의 여자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한다,
이 카페의 주인이다, 여자분이 안내하는대로 집 정원을 구경하는데 들국화 꽃들이 많이 피어 있고 열심히 정원을 가꾼 흔적이 보인다, 여러 종류의 야생화 꽃들도 피어 있다, 작은 연못에는 현재 버들치들이 살고 있는데, 원래는 연못에 붕어와 잉어를 키웠었는데, 수달들이 다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 집에도 연못이 있는데 비단잉어와 금붕어, 그리고 치어(稚魚)들을 수달들이 와서 다 잡아먹었다고 하니까 함께 웃으며 그 쓰라림을 공감한다,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귀촌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초보 시골 생활자들이다, 그 동안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 생각하니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어려움이 하나의 보람과 희망으로 노년을 건강하게 하고, 즐겁게 하리라는 생각에 내가 처음 산속 생활을 시작할 때 완전 희망에 들떠서 이른 새벽부터 신이 나서 일하러 다녔었던 기억에 웃음이 나온다,
카페 여주인의 안내로 실내로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집 한쪽 벽에 LP판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광경이 나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턱 수염을 멋지게 기른 60대 초반의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한다,
그리고 옛날 1970년대의 음악 다방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되어 있는 광경은 나를 아련한 그 시절로 인도한다,
뮤직 박스 안에서 멋쟁이 DJ가 자기 소개를 한다, 방송국에도 있었고, 서울 강남의 그랜드백화점 근처에서 LP Bar를 운영했으며, 강릉에서도 음악 카페를 운영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수많은 노래와 곡들의 역사부터 가수들의 사연까지 세세히 소개하며 우리 일행에게 음악을 신청하라고 한다,
이 선장과 천 사장도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한 곡씩 음악 신청을 하는데, 난 웃음이 나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되돌아간 것만 같다, 신청한 음악을 들으면서 카페 실내를 다시 한번 더 바라보는데, 벽과 선반 위에는 해외여행에서 사온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장식품들이 보인다,
그리고 실내 한가운데 벽난로가 놓여 있다, 그런데 불이 없는 싸늘한 난로다, 실내가 추운데도 벽난로에 불이 없으니,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난로에 불이 활활 타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아직 이 집은 온전한 카페라고 할 수 없는 게, 음료가 아메리카노 커피와 금국화차가 전부다, 그리고 맛없는 아메리카노 커피와 금국화 차 한 잔에 1만원씩 받는다, 추억의 음악 다방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골 산골에서 1만원의 차를 파는 건 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선장은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는 팝송을 신청하는데, 역시 전문가만이 즐길 수 있는 곡 선별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과거 음악다방에서 DJ를 했었던 그 시절을 연상하며 즐거워한다,
나는 가을이 왔으니, 가을의 노래를 한 곡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선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을 신청했다,
작은 JBL 스피커에 울려 퍼지는 패티김의 노래가 가슴을 친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창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가, 20대 때 들었던 패티김의 그 노래는 그대로 변하지 않고 흘러나오는데, 나의 젊음은 어디로 흘러가고 늙고 외로운 노인만 이곳에 있는가, 시간도 많이 흐르고 세상도 많이 변하고 이젠 아무도 모르는 머나 먼 길을 나 혼자서 가야 하는데,,,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딘가,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지도에도 없고 구글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먼 길을 나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데, 같이 함께 걸어갈 친구는 그어디에도 없구나,
오랜만에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음악을 들으며 늦은 가을을 즐기고 왔습니다,
젊었을 때 주인 남자는 DJ로 활동하면서 서울 대치동에서 LP Bar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와이프인 주인 여자는 무명가수로 활동했는데 그 빛바랜 사진만 쓸쓸하게 벽에 붙어 있다,
울진군 부구2길에 위치한 해변 뷰가 멋있는 부구의 <황제가(家): 장어 치즈 등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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