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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골이야기

소렌토(Sorrento)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현에 있는 코무네다, 또한 소렌토는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폴리항을 둘러싼 아말피 해구의 기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폼페이, 나폴리, 아말피, 살레르노로부터 가기도 쉬워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통해 잘 알려진 이 도시는 해안 도시지만 모래사장이나 자갈밭 같은 해변은 매우 적고 대부분 50m 높이의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16세기 르네상스 문학 최후의 시인이라 불리는 소렌토 출신의 시인 토르콰토 타소의 기녀미가 타소 광장에 있으며, 포도주, 올리브유, 고추의 주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일도 유명해서 레몬과 오렌지가 많이 나며, '돌아오라 소렌..

패키지 여행의 가장 큰 단점은 처음 여행객을 모집할 때는 싼 가격 으로 모집하고선 나중 예약을 하고 잔금을 치를 때는 환율이 올랐다고 하면서 유류 할증료를 더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여행을 떠날 때 환율이 내렸는데도 여행사에서 유류 할증료 150 유로를 내라고 해서 냈는데, 여행사 담당 직원한테 이 점에 대해 항의를 하니까, 처음 계약할 때의 환율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한다, 그리고 기사 및 가이드 경비로 7박 9일 일정인데, 비행기 2일 간의 탑승 기간도 포함해서 90 유로의 돈을 지불하고, 또 여행 기간 내내 옵션(선택 관광)이라는 걸 하면서, 실제는 10 유로 하는 걸 60 유로나 100 유로를 받는다, 그래서 이런 옵션을 다 포함하면 300만원의 여행 경비가 실제로는 500만원 정..

피엔차 역사 지구는 도시 설계에 르네상스 인본주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즉, 이후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를 넘어선 여러 도시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계획된 ‘이상도시’의 개념이 발생한 곳이다. 피엔차, 특히 중앙 광장 주변의 건물군에 이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인간이 갖는 창조적 천재성의 걸작을 만들게 되었다. 1458년 성 베드로(St peter) 교황에 추대된 인본주의 지도자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Enea Silvio Piccolomini, 1405~1464)는 시에나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르시아(Orcia)와 아소(Asso) 계곡을 굽어보는 언덕에 자리한 코르시냐노(Corsignano, 지금의 피엔차)에서 태어났다.교황이 된 지 몇 달 뒤인 1459년 2월에 고향을 찾은 비오 ..

피엔차(Pienza)는 토스카나주㎢의 크기와 약 380만명의 인구를 지닌,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주이며, 주도는 피렌체이다> 시에나도에 있는 코무네로, 피렌체에서 남동쪽 110km, 시에나에서 남동쪽 60km 거리에 있다, 피엔차 역사 지구는 1996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선정되었고, 2004년에는 발 도르차(Val d'Orcia,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시에나도에 있는 넓은 계곡) 계곡 전역이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피엔차는 본래 코르시냐노( Corsignano)라고 불리던 마을이 재건된 곳이며, 시에나에서 추방당한 귀족이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서 이후에 교황 비오 2세(Pius II)가 된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Enea Silvio Piccolomini)가 태어난 곳이다, 그가 ..

지금은 내륙(內陸)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江)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帝政)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人)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人)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그동안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시(植民市)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혀..

이태리 패키지 여행할 때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 폼페이지만, 이곳을 갈 때마다 느낌이 매번 다르다,우선 자연의 재앙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깨닫게 된다, 화산이 폭발해서 그 찬란했었던 도시를 단 하루만에 폐허로 만들고 그 흔적은 수천 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는데, 화산 폭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폼페이 유적지다,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 무렵, 베수비우스 화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산 쇄설물이 폼페이 시에 비 오듯 쏟아졌고, 다음 날에는 타는 듯한 뜨거운 가스의 구름이 휩쓸었다. 건물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압사하거나 질식사했으며, 도시는 재와 화산암 더미 밑에 파묻혀 버렸다.몇 세기 동안 폼페이는 재로 된 장막 아래, 밑에 깔린 잔해가 완벽하게 보존된 채..

시에나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데 참 행복하다, 추억이 묻어 있고, 가이드가 2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시에나 골목길을 걸으며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에서 올리브 나무로 만든 함지박 작은 걸 하나 샀다, 50% 세일한다고 해서 15유로를 주고 사서 산속 집에 가져와 진열해 두었는데, 참 이쁘다, 시에나 두오모 성당 앞에 있는 작은 성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린 후 명상에 잠긴다, 내가 왜 이런 여행을 왔는지, 그리고 이태리 여정을 잘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한동안 기도를 드린 후 성당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입구에 서있던 신부님이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며 이런 저런 질문과 함께 을 하며 대화를 하고 ..

시에나는 나에게 추억이 어린 정겨운 도시다,10년 전 시에나에 왔을 때, 시에나의 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이태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 식당은 백상현씨가 쓴 이라는 책자에 소개된 맛집으로 시에나 캄포 광장 뒷골목에 위치해 있는데, 책자에 나온 주소를 가지고 시에나 주민에게 물어서 간신히 찾은 기억이 난다, 이 식당의 여사장은 내가 한국의 백상현이라는 여행작가가 쓴 책을 보여주면서 여기에서 소개하여 찾아왔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며 극진하게 나를 대접하였다, 이태리의 가정식 전문 식당답게 내가 주문한 음식 외에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도 가져다주고, 와인도 자기가 직접 담근 와인이라고 하면서 그냥 병 채로 가져다주었다, 맛있는 음식에 배가 부르고 자꾸만 권하는 와인에 취해서 나는 이 여사장과 수다를 떨었..

피사로 가기 위해 함께 여행 온 33명의 여행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현지 가이드 미스터 리의 뒤를 따라 천천히 도로를 걷고 있었다, 이태리도 날씨가 우리나라 이상으로 덥다, 우리 일행들 말고도 참좋은 여행사에서 온 세 팀, 약 100명의 한국인 관광객들도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좁은 도로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피사의 사탑을 피사의 사탑(Leaning Tower of Pisa)을 보기 위해서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나도 가이드를 따라 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여자분이 소리친다, 그리고 나보고 가방을 살펴보란다, 난 어깨에 소지품을 넣은 투미(TUMI) 스몰 크로스백을 메고 다닌다, 가방을 어깨에서 크로스로 옆구리에 차고 카메라를 들고 걷고 있었는데, 내 뒤에서 소리치는 여자분의..

친퀘 테레(Cinque Terre)는 유명한 관광 명소로, 이태리 북서쪽의 리구리아주에 있는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가 지역으로, 다섯 개의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친퀘 테레를 이루는 '다섯 개의 땅'은 몬테로소 알 마레,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이다, 다섯 마을과 주변 언덕, 해변은 전부 친퀘 테레 국립공원의 일부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다섯 개의 마을들 중에서 베르나차는 이태리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몇 세기 동안 절벽을 포함한 바위투성이의 가파른 지형에서 리구리아 해(海)가 엿보이는 테라스들을 구축했고, 친퀘 테레의 특징이자 매력이 되었다, 좁고 불안정한 산길로 인해 내륙에서 자동차로 마을로 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주로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