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골이야기
살다 보면 아픈 이별도 찾아오더라,,(2) 본문
아들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보잉사에서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삼성전자로 스카웃되어서 5년 동안 근무하다가 올 3 월 말에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실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말은 작년부터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언젠가는 이별할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날이 늦게 오길 가슴 졸이며 기다렸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동안 한국이라는 하늘 아래 살면서 한 달에 두 번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했었는데, 너무 빠른 날짜에 놀라움과 함께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이별을 아쉬워하며 오늘(3월 22일, 토요일) 팔당에 있는 콩요리 전문점 '일심본가'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동안 함께 했었던 추억담을 조금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창 밖으로 한강물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 회상에 잠겼다,
손자도 이제 5살이 되었다, 처음 한국에 올 때는 태어난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건강하게 성장했다,
말도 잘하고 귀엽고 영리해서 우리 가족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이 사랑스럽고 예쁜 손자와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슬픔이 몰려온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가족과의 이별은 그 슬픔이 오래오래 가는데, 예컨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과의 이별은 제일 견디기 힘든 아픔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오는데, 이런 이별이 없이 사는 세상은 천국이리라,
내 친구들 중에 자기 아들과 영원히 이별한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 친구들은 자기 아들과 이별하고 나서부터는 자기의 인생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면서 그 아픈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고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데,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특히 밤이 되면 아들과 관련된 생각들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더라,
아주 오래 전에 세 명의 친구들 아들이 사망해서 문상을 갔었는데, 그때의 친구들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웃는데 웃는 것이 아닌, 또 슬픔을 나타낼 수도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야릇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내 평생 동안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들이 더 잘되고 더 좋은 환경으로 돌아가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허전하고 슬픈지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다시는 못볼 것 같은,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갑작스런 소식에 함께 일하던 직원들 또한 몹시 아쉬워하며 팀별로 송별 파티를 몇 번이나 열어주었다고 한다, 또 직속상관인 부사장도 아들한테 이렇게 빨리 떠날 줄 몰랐다고 하면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삼성에 꼭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서 직접 쓴 손 편지를 전해주더란다, 그리고 손자에게 과자 상자와 100불을 선물로 주었다고 하면서 나한테 부사장이 쓴 편지를 보여주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삼성과 같은 깐깐한 대기업에서 겸공한 마음 자세를 잃지 않고 사회생활을 잘한 아들이 기특하고 내가 참 잘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겁다,
그리고 오늘(3월 31일) 오후 아들이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우리 가족과 사돈 가족들이 만나 아들 가족과 공항에서 이별을 고했다,
아들은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5년간 한국에 살면서 본인이 사용했던 여러 가지 가전제품과 물건들을 우리 가족과 사돈 가족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는데, 그 많은 짐을 정리했는데도 8개의 큰 짐을 대한항공편에 부치는데, 비즈니스 좌석이라서 32kg 짐 6개는 무료이지만 나머지 두 개 중 한 개는 그냥 통관시켜 주었고, 다른 한 개의 가방은 20만원 정도의 차지(charge)를 부과하였다,
또 다른 많은 짐은 배편으로 부쳤다, 5,000 불이란다, 이비용도 다 삼성에서 부담 하였다,
역시 삼성은 큰 대기업이라서 떠나는 직원에게도 배품이 크다,
삼성전자에서 세 명의 가족에게 비즈니스 좌석을 끊어주었기에 어린 손자도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간다,
어린 손자는 미국으로 간다는 사실 때문에 마냥 신이 나 있다, 내가 우리 대박이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미국 시애틀로 오면 된다고 명쾌하게 대답한다,어쩌면 참 명괘한 대답이다, 머 우문현답 이랄까,
아들 가족이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모두를 안아주고 손을 흔들고 가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리다, 잘되어서 자기 집으로 가는데도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홍어회와 막걸리 한 병을 마시며 아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합니다,
지금 이 순간 참으로 착하고 고마운 효자 아들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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